게이트
재차 그림자에 집어삼켜진 하늘은 칠흑같이 어두웠다. 그들이 머물고 간 모든 자리는 곧바로 산산조각이 나 폐허와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.
죽음의 위기 앞에서 가족 앞을 막아서는 몸뚱어리가 보였다. 발갛게 충혈된 두 눈은 새까만 재앙의 아가미가 쏟아내는 그림자들을 노려보았다. 귓가가 찢어질 것 같은 소음이 주변에서 연속적으로 일었다. 소년은 위를 바라보았다. 지옥의 파편들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. 아, 마지막으로 달을 제대로 본 게 언제였나. 하늘은 검었다.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.
종교를 가져본 적 없는 이였다. 그러나 신이 있다면 이래선 안 됐다. 죄 없는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하는 게 신인가? 소년은 신을 탓하면서도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가족들의 앞을 막아서며 절박하게 빌었다. 만약 당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날 데려가라고. 가족들을 살게 해주고 나를 데려가라고.
끝을 눈앞에 두고 두려움에 눈을 감은 순간이었다. 종말을 예감했는데. 분명했는데. 그 순간 하늘에서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. 새까만 하늘 속에서 뿜어져 나온 한줄기. 이질적으로 환하게 빛나던 그 빛은 소년을 향해 수직으로 떨어졌다.
그때 손에 무언가 잡히는 게 느껴졌다. 공포심에 감긴 눈이 뜨여졌고 시선은 자연스레 손을 향했다. 활과 화살이었다. 그것들에 정신이 팔린 사이 괴물은 어느새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. 생각할 틈도 없이 손에 쥔 화살을 칼처럼 쥐곤 괴물의 시커먼 몸속에 찔러넣었다. 그 후 펼쳐진 건 자신이 알지 못한 세계였다. 화살 끝에 찔린 괴물은 빛무리처럼 흩어져 사라졌다. 어디로 간 건진 알 수 없었다. 소년은 화살과 좀 전의 괴물이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다 눈을 돌려내었다. 눈앞에 보이는 건 전에 비해 느리게 움직이는 그림자들. 손에 들린 화살 끝이 달빛처럼 은은히 빛났다.
소년은 망설임 없이 괴물을 향해 활을 겨눈 채 활시위를 팽팽히 당겼다.당겨진 활시위는 보름달 같았고.
마침내 재앙을 끝낼 시간이 도래했다.놓인 건 반달과도 같았지.
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.